'촛불'에 드리워진 계급의 그림자<흥부전>은 식욕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. 신재효본 <박흥보가>를 보면, 흥부가 탄 박에서 쌀이 나온다. 흥부의 아내는 그 쌀로 밥을 짓고 반찬을 사서 먹기로 한다. 반찬은 쇠고기다.
“넉 냥 아홉 돈을 쇠고기를 모두 사서 반찬을 하려 할 때, 식칼 도마가 어디 있나 여러 자식 놈들이 고기를 붙들고서 낫으로 자를 적에 고기 결을 알 수가 있나. 가로 잘라 놓은 모양 서까래 머리 잘라 놓은 듯, 기둥 밑 잘라 놓은 듯, 건개와 양념들도 별로 수가 많지 않아, 소금 뿌리고 맹물 쳐서 토정에 삶아 내고, 그릇 없어 밥 푸겠나, 씻지도 않은 쇠죽통에 밥 두 통을 퍼다 놓고, 숟가락은 근본 없고 있더라도 찾겠는가, 여러 해 물기 안 한 손물통 가에 늘어앉아 서로 주워 먹을 적에, 이 여러 자식들이 노상 밥이 부족하여 서로 뺏어 먹는구나. 그리 많은 밥이지만, 서로 집어 먹었으며 싸움 아니 하련만, 악을 쓰며 주먹 쥐어 작은 놈 볼통이가 이가 빠지게 찧으면서, 개 아들놈 쇠 아들놈, 밥통이 엎어지고 살벌이 일어나되, 무지한 저 흥보는 밥 먹기에 윤기(倫紀)도 잊어버려 자식 몇 놈 뒈져도 살릴 생각 아예 않고, 그 뜨거운 밥인데도 두 손으로 서로 쥐어서 쭉방을 날리는 식으로, 크나큰 밥덩이가 손에서 떨어지면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, 턱도 별로 안 놀리고 어깨춤 눈 번득여, 거진 한 말 어치 처치를 한다.”
나는 <박흥보가>의 이 부분이 가장 싫다. 굶주린 백성의 식욕을 윤기, 곧 윤리조차 잊어버린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. 하지만 이 부분은 백성의 쇠고기에 대한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. 자식들이 쇠고기의 결도 모른다는 것은 쇠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. 그래서 반찬으로 쇠고기가 맨 먼저 선택되었던 것이다.